[#해단식][활동후기] 존중의 기억

글 지식존중 크루1기 김재완


이제 막 벚꽃이 지고 매화가 그 자리를 대신할 무렵이었고, 소설만 읽던 내가 시집을 하나 빌려 읽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새로운 환경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여행도 가보고 싶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봄기운을 빌려 새로운 시작에 용기를 내어 지식존중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처음 지식존중 모집공고 활동 설명을 읽었을 때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딱 맞아떨어졌다. 지역탐방을 할 수 있고 아이디어 기획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멸위기지역을 홍보하는 프로젝트였다.

지원서에는 자기소개와 함께 지역 리포지셔닝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출해야했다. 무주라는 지역은 처음 들어봤기에 지식존중 사무국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함께 인터넷으로 기본적인 정보를 찾아봤다. 그리고 떠올린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작성했다. 합격하면 실제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건지 상상했다.


면접 날.

면접장에 들어갔을 때 떠오른 색깔은 회색이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도시적인 냄새를 풍기는 면접위원, 그리고 말투에서 나오는 차분함. 그 와중에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는지 여쭸을 때 은은하게 비친 따뜻함. 그 분위기에 잠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대외활동은 활발하고 열의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할 것 같았는데, 담담하게 나를 보여줘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발대식 날.

면접을 봤던 그 장소에서 발대식을 했다. 면접 때 봤던 색깔은 회색이었는데 이번에는 강당을 가리던 책상이 사라져서인지 원목이 가지는 선명한 갈색들이 보였다. 이제야 공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볼 땐 차가워 보였는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니 따뜻함이 뒤에 가려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대식에서 대상그룹의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좀 더 뚜렷하게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나는 기억한다. “더 많은 것들을 존중의 대상으로”

발대식이 끝나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할 실무진, 대학생, 퍼실리테이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앞으로 몇 달 간 매주 만나며 함께 할 사람들이었다. 퍼실리테이터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는데 회의가 침묵이나 다른 주제로 세지 않게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이었다. 매번 워크숍 시작 전에는 간단한 게임을 준비해오시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가볍게 긴장을 털어내며 시작할 수 있었다.


존중 프로젝트의 시작- 무주에 대한 좋은 기억

발대식 이후 첫 워크숍에서 우리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각자 지식존중 프로젝트를 지원할 때 쓴 아이디어를 공유했는데, 누군가는 면접 때 받은 질문으로 아이디어를 보강하기도 했다. 나는 머루카드 전시 형태를 구상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놀랐다.

우리는 같은 주에 무주 탐방을 갔다. 도착했을 때 서울과 다른 공기에 시원함을 느꼈고 이내 경치가 눈에 보였다. 서울에서 나무를 봤다면 무주에서는 산을 볼 수 있었다. 여름의 시작이듯 초록색이 산을 둘러 퍼져 있었고, 시원한 바람은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창문을 넘어 보여지는 그 결들이 무주에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어느 카페에서 우리는 무주를 탐방할 팀을 정했다. 그 중 나는 치목마을과 머루와인동굴, 적상산전망대 팀으로 배정되었다.

우리를 안내해주시는 분은 무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은 무주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적상산의 유래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상산을 단풍이 들면 붉은 치마가 두른 것 같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알고 있지만, 작가님은 노을에 비친 적상산 절벽이 아름다워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셨다. 실제로도 노을 진 무주는 아름다웠다. 산골영화제를 보려고 등나무운동장 근처 주차장에 내렸을 때 이미 시간은 저녁을 넘어섰고, 나는 내가 서 있는 반대편 산 위로 주황색 노을이 드리우는 것을 보았다. 계속 움직여야 하는 와중에 나는 카메라로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들어간 등나무운동장에서는 넓고 시원하게 운동장이 펼쳐졌고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산골영화제 개막식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서 앉거나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사이에 서 있자 저녁에 한강 갔을 때 못지않은 편안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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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온기. 운동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인을. 영화를. 등나무운동장을. 어쩌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하면 더 예뻐진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도, 사랑받는 것 자체에도 변화는 생긴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애정어린 눈빛이 다른 것을 더 빛나게 만들 수 있음에 신기해했다. 누군가 남긴 흔적은 분위기에 짙게 베여 있고, 누군가는 그 흔적에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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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낮에 등나무운동장을 다시 갔지만 어제와는 다른 공간에 온 것 같았다. 저녁에는 퇴근 이후 찾아간 한강처럼 평온했다면, 낮은 맑은 날 피크닉하러 온 것처럼 북적북적했다. 무주에 갔다 와서 나는 무주의 평온했던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무주가 왜 지식존중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식존중 프로젝트의 시작이 더 많은 것들을 존중하는 따뜻함이었듯이, 무주는 작은 시골의 따뜻함을 쥐고 있었다. 시민들이 햇빛을 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운동장에 등나무를 설치했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산골영화제에 다회용기 부스를 설치했고, 착한 가격으로 푸드 부스를 운영했다. 무주의 따뜻한 분위기가 지식존중의 결과 맞닿아 있었다.


지식존중을 향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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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걷다 보면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존중을 찾고 있는데 그 존중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는지, 어떤 향을 내는지, 누구와 가깝게 지내는지. 나는 존중의 모습을 한껏 오해하기도 한다. 멋지고 화려한 장식을 한 모습이었다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들을 마구 자랑하는 모습이기도 한다. 누군가 그건 존중의 모습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나서야 나는 다시 존중이 무엇인지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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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 갔다 와서 어떻게 하면 무주에 사람들이 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탐방 갔을 때 본 와인동굴의 전시구성이 아쉬운 것 같아 재미있게 꾸며보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산 속에 동굴이 있다는 점과 사람들이 잘 모르는 평화로운 지역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무릉도원 컨셉의 미디어 파사드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동굴 내부를 모두 미디어 아트로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게다가 화려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로 혹하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존중과는 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팀의 발표를 듣는데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많았었다. 거울을 활용한 피크닉이나 등나무운동장에 등나무조명, 남대천에 와인병조형물을 설치하는 것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선택된 것은 무주에 브라키오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브라키오는 지식존중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초식공룡이었다. 소외된 이들을 대표하는 브라키오가 무주에 오면서 지역과 식재료를 존중하고 소멸위기지역을 알린다는 서사가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기획팀에서 배운 것들

기획팀의 멘토는 한아름 팀장님이었고 나는 어깨너머 팀장님이 하는 말들을 기억하며 그 방식을 배우려고 했다. 팀장님은 항상 여러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하기 전 이미 모든 고려사항을 숙지하고 오신 듯했고, 워크숍 때마다 각 팀에 필요한 피드백이나 의문점을 제시할 때면 나는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뜨곤 했다. 간혹 너무 빠른 진행속도에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도 있었다.

팀장님은 효율을 중시하시는 분이었다. 일을 분담하고 모든 사람이 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자기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 기획팀도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누군가는 답사 현장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팀장님이 시공업체와 무주군청과 얘기하는 것을 메모했으며, 누군가는 답사 대신 기획안을 마무리했다. 시간이 중요한 싸움을 할 때 이 방식은 꽤나 합리적이었고 유용했다.

브라키오가 설치될 장소를 다른 팀들과 공유하기 위해 기획팀은 빨리 답사를 갔다와야 했다. 빠듯한 일정이었다. 답사 일정과 후보 장소들을 골라 가기획안을 제출한 뒤 우리는 바로 무주로 향했다. 기획을 하는 사람은 신경써야 할 게 많았고 여러 사람들을 컨택해야 하는 듯 했다. 답사를 가는 내내 팀장님은 여러 사람과 통화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셨다.

답사를 갔다오고 기획한 것은 생각보다 많이 엎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실무가 들어갈 때는 더 예민한 것 같다. 안전문제, 법률문제, 미관, 이슈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봐야 했고 사진으로 보았을 때 괜찮았던 곳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알고 있어야 했고, 그걸 정리하고 기록하고 있어야 했다. 머릿속에 다 기억하려면 힘들 것 같았다.


홍보콘텐츠

기획팀의 일정이 거의 끝났고, 활동은 어느새 설치와 홍보만을 앞두고 있었다. 크루들은 기획팀, 스토리텔링팀 구분하지 않고 홍보 콘텐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나는 이벤트 기획을 맡았다. 이벤트 기획안을 만들 때 2가지를 안건으로 두었다. 첫 번째는 지식존중 공식계정을 오픈했을 때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것인지, 두 번째는 사람들이 지식존중 콘텐츠에 관심가지고 무주에 가게 할 것인지였다. 그래서 첫번째는 팔로우 이벤트를 준비했고, 두 번째 이벤트는 n행시를 활용해 수상자에게 무주 숙박권을 지급하는 방식을 기획했다. 카드뉴스는 만드는 데 익숙하지 않았지만 다같이 하다보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계속 할 수 있었다. 혼자였으면 아마 이렇게 하지 못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팀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해단식

생각보다 여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벌써 지식존중의 마지막 활동인 해단식을 마쳤다.

비가 온다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브라키오는 무사히 설치되었다. 그리고 나는 감사하게도 해단식에서 대표로 크루소감을 맡게 되었고, 지식존중에서 느낀 것들을 존중이라는 키워드로 풀어 준비했다. 내가 지식존중에서 느낀 존중의 의미는 관심이었고, 많은 것들이 소외되지 않고 잘 어울리도록 응원하는 것 같았다는 내용으로 준비했다. 중간에 갑작스런 피드백이나 인터뷰가 있었지만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던 프로젝트가 진짜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단식이 끝나고 남대천, 와인동굴에 설치된 브라키오들을 볼 수 있었다. 귀여운 모습으로 자리잡은 브라키오와 각 장소에 어울리는 조형물들이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기획하고 홍보를 준비했던 것이 실현돼 뿌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홍보이고, 사람들이 무주에 많이 찾아왔으면 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봄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이번 여름은 꿈같았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팀을 이루면서 소통할 수 있었고, 해보지 못했던 일을 바로 실무로 접할수도 있었다. 이번 여름에 마주한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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